1. 히틀러의 출생과 유년기 (1889~1903)
1.1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아이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라우나우 암 인(Braunau am In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과 가까운 국경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어릴 때부터 강한 독일 민족주의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는 세관 공무원으로 엄격하고 권위적인 성격을 가졌다. 반면,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Klara Hitler)는 신앙심이 깊고 자녀들에게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1.2 학창 시절과 예술적 꿈
어린 시절 히틀러는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공무원이 되길 강요했다. 히틀러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결국 성적이 떨어지면서 학창 시절을 불만과 반항 속에서 보냈다.
🖌️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을까?
히틀러는 풍경화나 건축물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인체나 사람을 그리는 데에는 재능이 부족했다.
2. 비엔나 시절과 반유대주의 사상의 형성 (1903~1913)
2.1 미술 아카데미 낙방과 절망
히틀러는 1907년과 1908년, 두 차례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Vienna) 입학 시험에 응시했지만 모두 불합격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그림이 "창의성이 부족하고 인체 묘사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극심한 좌절을 겪었으며, 어머니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완전히 삶의 방향을 잃게 되었다.
2.2 노숙 생활과 정치적 사고 형성
입학에 실패한 후, 히틀러는 비엔나에서 극심한 가난을 겪었다. 그는 엽서를 그려 팔거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책을 읽으며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이 시기에 히틀러는 유대인 혐오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빈에서 생활하던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실패를 유대인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강한 반유대주의적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3.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독일 민족주의 사상 확립 (1914~1918)
3.1 독일군 입대와 전쟁 참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서부전선에서 통신병으로 활동하며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전장에서 두 차례 부상을 입었고, 철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경험은 히틀러에게 강한 애국심과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3.2 독일 패전과 배신감
1918년 독일이 항복하자, 히틀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패전 원인을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의 배신 때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독일의 재건을 꿈꾸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가게 된다.
4. 나치당 창당과 총리 임명 (1919~1933)
4.1 독일 노동자당(DAP) 가입과 선동가로의 변신
1919년, 히틀러는 작은 극우 정당이었던 독일 노동자당(DAP)에 가입했다. 그의 뛰어난 연설 능력과 대중 선동 실력 덕분에 당원들은 그를 빠르게 지도자로 추대했다.
1920년, 히틀러는 당명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흔히 '나치당')"으로 변경했다.
🗣️ 히틀러의 연설 스타일은 어땠을까?
히틀러는 단순한 메시지를 강하게 반복하며, 대중을 감정적으로 휘어잡는 연설 스타일을 사용했다.
4.2 뮌헨 맥주홀 반란과 감옥 생활 (1923)
히틀러는 1923년,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어 9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시기 그는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정리했다. 이 책에서 그는 유대인을 독일의 적으로 규정하며, 독일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선 전쟁을 통해 '생존 공간(Lebensraum)'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3 대공황과 나치당의 성장 (1929~1933)
1929년 세계 대공황이 터지면서 독일 경제는 붕괴했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이 혼란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당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급격히 확장했다.
결국 1933년 1월 30일, 독일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는 히틀러를 독일 총리(Chancellor)로 임명했다. 이는 나치 독재의 시작을 의미했다.
다음 편 예고: 히틀러의 집권과 독재 체제 구축 (1933~1939)
다음 편에서는 히틀러가 총리가 된 이후, 어떻게 독재 체제를 확립했으며 전쟁을 준비했는지를 다룰 예정이다.
👉 [2편] 히틀러의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1933~1939)에서 계속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편] 히틀러의 전쟁과 몰락 (1939~1945) (0) | 2025.02.10 |
---|---|
[2편] 히틀러의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1933~1939) (0) | 2025.02.10 |